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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雜想 : 오늘의 단상 (39)
감상적 속물
모든 관계는 낙장불입이라 '우리 예전처럼 다시'는 어떤 경우에도 가능하지 않다는 글을 보았다. 고백 전으로도, 실수 전으로도, 이별 전으로도,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모든 관계 속에서 순간 순간 내가 이 관계에 대해 무엇을 느끼고 어떤 판단을 내리며 어떤 행보를 취할지 집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고.어딘가 이상하고 조금 망가져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진작에 인정했어야 했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했다. 항상 다 망쳐버리고 놓치고 잃어버린 다음에사 내가 그걸 망치고 놓치고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결국 또 다시 망치고 놓치고 잃어버리게 되버렸다. 지금의 내가 이전보다 더 이상해지고 망가져 있다는 사실과, 지금까지의 내가 줄곧 아둔했..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났다.늦게 일어나기는 했지만 일어나서도 특별히 할 일은 없었기 때문에 멍하니 있다가 다시 잠을 청했다. 더 이상 잠들 수 없을만큼 자고 난 후에야 무겁게 몸을 일으켜서 어제의 설거지를 하고 지난 겨울의 이불 빨래를 돌렸다. 안 하던 짓에 세탁기도 다소 당황했는지 몇 번의 헹굼과 탈수를 반복한 끝에 이불을 볕에 널 수 있었다.다행인지 아닌지 날씨는 좋았다. 나의 무료한 일상과는 무관하게 화창하고 따뜻한 날이었다. 저녁은 늘 해먹던 예의 파스타를 해먹었다.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은 하루라 요리에 쏟을 집중력이 상당히 남아있었던 건지, 익숙하디 익숙한 맛이지만 왠지 조금 맛있다고 느꼈다. 조용히 하루가 지나간다.
뻘짓을 하느라 하루 하루를 상당히 무의미하게 보내던 와중에, 오늘 하루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덜 무의미하게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하루는 후딱 지나갔다. 원래 하루는 그냥 빠르게 지나가는 듯.
여행을 갈 만한 짬이 생겼다. 주변의 아이들도 이미 일찍부터 세워 놓은 각자의 계획들을 따라서 여기저기로 떠났다. 다들 부지런히도. 그런데 나는 영 어딘가로 떠나는 게 쉽지가 않다. 기본적으로 스스로가 그리 호기심이 많은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은 조금 여러모로 아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가고 싶은 곳이 없다. 이쁘디 이쁜 이국의 마을들을 두 눈에 담을 절호의 기회라는 건 잘 알고 있다만, 딱히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마음은 도통 들지가 않는다. 어딘가 혹은 무언가를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 만큼의 기본적 지식이 없어서 그런 거려나? 글쎄, 모르겠다. 한편으론 웃긴 일이다. 여기에 있기 싫다는, 어린애 투정 같은 마음 하나로 대책 없이 이역만리에 와있는 주제에 딱히 가고 싶은 데는 없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