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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적 속물
어느덧 권태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다는 얘기다. 하루를 기록하고 싶어졌다는 건, 여지껏 그래왔듯이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는 시간 속에 있다는 얘기다.이런 상황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한 달 여의 시간동안 쉰다는 명목으로 당당히 무위의 시간을 가졌지만 사실, 그 시간은 이전의 내가 얼마만큼 많은 것들을 상실하거나 망각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지금의 시간부터는 부디 내가 잊거나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확인하게 되지 않았으면 한다. 조금 제대로 쉬어볼 셈이다.
지구상의 어디에서도 더이상 만 29세라 우길 수 없는, 빼도 박도 못하는 30이란 숫자가 서서히 포위해오고 있다. 이 놈의 머슴팔자는 최근에도 나를 한 달 가량 집 밖으로 돌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이 참에 아예 내 의지로 밖으로 나돌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으나... 머슴팔자에 그런 생각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는지 가차없이 튕겨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하기 싫은 것도 분명치 않은 그런 서른... 싫스모니다~
사랑니라는 게 언젠가부터 조그맣게 입 속에서 느껴졌다. 아프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빼야 하겠지만 아직은 괜찮을 거라 생각하면서 차일피일 결단(!)을 미뤄왔는데, 그 결단의 순간이 엉겁결에 찾아와버렸다. 분명히 내발로 찾아간 치과였지만 어디까지나 즉흥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심사숙고였든 즉흥이었든 나의 사랑니는 수술판정을 받았고, 담담하면서도 왠지 무기력하게 뽑혀 나갔다.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이 될 줄은 몰랐고 아플거란 건 알았지만 이런 느낌이 될 거란 것도 몰랐다. 이렇게 사랑이(齒), 안녕을 고했다.
어느새 얼굴에서 주름을 세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난 아직 너무도 어리다. 단 한 순간도 준비된 마음으로 세상사를 받아들여 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나에겐 너무도 이르고, 너무도 놀랍고, 너무도 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