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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부산시민공원 역사관 (1/2) 본문

展示 : 외면할 수 없는 것들

[2014] 부산시민공원 역사관 (1/2)

blueturtle46 2015. 5. 6. 03:20

 

부산시민공원 역사관 홈페이지 - http://history.citizenpark.or.kr/history/Main.do

 

 지난 2014년 5월 개장한지 한달 만에 160만명이 다녀가고, 개장 10개월 만에 누적 방문객 1000만명을 기록한 문화시설이 있다. 바로 부산시민공원이다. 총 면적 473,279㎡의 이 공원은 350만 부산시민들로부터 그야말로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현 공원부지 일대는 1910년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서, 1945년 일제의 항복선언 이후 미군이 주둔하여 2006년 부지가 폐쇄되고 2014년 시민공원으로 개장하여 다시 부산시민의 품에 돌아갈 때까지 약 100여 년의 시간을 외세에 의해 점령당한, 대한민국과 부산의 근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다. 거시적 역사와 개인들의 미시적 기억들을 간직한 부산시민공원은, 문화인프라에 굶주려 왔던 시민들의 갈증과 맞물려 월 평균 100만의 방문객을 기록하며, 부산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 부산시민공원 부지 내에는 이 모든 역사와 기억들을 담아내기 위한 부산시민공원역사관(이하 역사관)이 위치하고 있다. 역사관은 미군부대 주둔 당시 장교클럽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박물관으로 부분 개축하여 사용하고 있다. 부산시민공원 내에는 역사관과 같이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시설물 11개소를 보존하고 있는데, 역사관의 경우 보존부분의 천장 문양이 욱일승천기가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역사관은 입지에 의한 일종의 외부효과라고도 볼 수 있지만 탁월한 잠재적 집객 능력을 갖추고 있고, 동시에 논란을 일으키는 화제성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은 상대적으로 박물관 담론이 많이 형성되지 않은 대한민국, 특히 지방도시인 부산의 박물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특징이다.

 

기억의 공간

 역사관의 건축은 구 장교클럽의 원형을 보존한 부분과 새롭게 개축한 부분의 두 군데로 나뉜다고 볼 수 있는데, 역사관의 입구를 통해서 관람객이 들어왔을 때 먼저 마주하게 되는 부분은 바로 기존 건축을 보존 부분이다. 미군 주둔 당시에 장교클럽에서 티켓을 발권하던 데스크를 역사관의 안내데스크로 활용함으로써, 관람객에게 이제 다른 시간과 경험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전이의 메시지를, 보존 부분이 가진 서양적 질감의 공간이 전달해주고 있는 셈이다. 기존의 미군 장교클럽 건물 자체도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입구의 통로는 성인 두 명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공간인데, 이 좁은 입구의 공간을 통하자 마자 만나게 되는 전시홀의 넓은 공간감은 공간의 배치만으로도 극적인 첫인상을 경험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매체의 발달에 의해 물리적 경계가 점점 흐릿해지기는 하지만, 아직까지의 박물관전시는 물리적 공간에서의 오감을 통한 감각적 경험이라는 점에서 건축이 전시에 기여하는 바는 무시할 수가 없다. Imperial War Museum North의 전시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건축이 아닌 평균적 층고의 박스형 건물에서 기획되었다면, 지금의 전시가 주는 인상과 커다란 스케일의 효과는 절감됐을 뿐 아니라 전시계획 자체를 다르게 전면 수정해야 했을 것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역사관의 전시 또한 건축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다. 기존의 역사성을 유지한다는 의미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전시공간에서 가장 큰 단위 공간인 ‘기억의 공간’이 바로 보존부분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실제로 완공된 전시를 관람하고 나서도 가장 인상에 남는 이미지도 이 홀에 대한 이미지였다.

 홀 공간의 연출은 원형의 벽면 중 150°가량에 해당하는 부분을 스크린으로 활용해서 대형 프로젝션 영상을 쏘는 방식이다. 영상이 전달해주는 스펙타클은 스크린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는데, 대형 편집애니메이션 영상연출로 홀 공간을 일종의 스탠딩 극장처럼 활용한 것은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아이디어였다. 공원부지가 거쳐왔던 역사적인 질곡들을 표현한 러닝타임 3분 가량의 영상은, 상업영화 수준의 미적 완성도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21세기 대한민국 부산에서 20세기 미국의 장교클럽으로, 그리고 그 사이의 어딘가로 관람객의 의식을 위치시켜주는 역할은 충실히 수행한다.

 영상과 함께 관람객은 홀 공간의 벽면과 천장을 자연스럽게 살펴보게 되고, 스크린 반대편 벽면에 설치된 모자이크 형식의 공원 연혁도 보자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그런데 홀 공간에서 다소 아쉬운 점 또한 공간 내에서의 시선과 동선의 흐름이다. 주된 연출이 벽면의 프로젝션 영상과 반대편 벽면의 그래픽 사인이다 보니까 관람객이 영상을 보고 나서도 그 자리에 선채로 시선만 돌려서 사인을 보는 상황이 발생한다. 홀의 공간은 넓지만 관람객이 실질적으로 이동하는 공간은 한정적인 것이다. 천장의 패턴과 구조물이 가진 역사적인 가치로 인해서 원형 홀 전체를 하나의 단위공간으로 활용하려다 보니까 이같이 동선의 흐름이 지체되는 상황을 감수하게 되었는데, 그나마 홀의 물리적 공간자체가 비좁은 것은 아니라서 심각하게 관람을 방해하는 요소는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건물의 천장 패턴과 구조물을 유지하고 원형 홀을 하나의 단위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아이디어가 실질적으로 관람에 위협이 되는 상황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발생하는데, 바로 천장 문양의 욱일승천기 논란이다. 서두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본 홀의 천장문양이 욱일승천기를 닮았다는 일부 단체의 주장 때문에 박물관의 역사인식이 적절성 논란에 휩싸였고, 천장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박물관 측에서는 해당 문양이 욱일승천기가 아니라 주둔하였던 미8군의 문양이라는 설명사인도 추가적으로 홀에 설치하였고, 부산시에서는 해당 주제로 토론회도 개최한 바 있으나 해당 논란은 2015년 5월 현재시점에서도 진행형이다. 그런데 욱일승천기 논란이 환기시켜주는 전시에서의 문제점은 맥락을 오독하는 일부 단체의 인식수준에 대한 것이 아니라, 홀에서의 연출은 물론이고 전체 전시의 어떤 부분에서도 이런 역사적 보존에 대한 맥락이 없다는 점이다. 홀을 통째로 하나의 공간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창문까지 막고 스크린을 설치할 정도로 기존의 건축을 적극적으로 유지하고 활용하고 있다면, 그 보존의 이유나 맥락을 관람객에게 전시의 내용을 통해서 제시했어야 한다. 맥락이나 당위가 전시 속에 없는 상황에서, 그저 논란을 부정만 하는 것은 전시 기획의 약점이고 분명한 실책이었다. 
제1전시실: 잃어버린 땅, 잃어버린 기억 앞선 ‘기억의 공간’에서의 전이 경험은 관람객의 인식을 현재의 부산에서 캠프 하야리아, 그 이전의 시간에까지 확장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1전시실 ‘잃어버린 땅, 잃어버린 기억’ 에서는 현 시민공원 부지가 역사에 등장하는 첫 순간이자, 확장된 인식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로 돌아가 연대순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1전시실에서는 한국에서 역사를 다룰 때에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브라운 계열의 컬러를 공간의 주조색으로 사용하고 있고, 전체적으로 낮은 조도 하에서 국부조명을 사용해서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대한민국에서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주제이기 때문에, 전시실 공간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색채나 조도 사용은 적절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대한민국의 역사는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외세에 의해 결정된 부분이 많았고, 시민공원부지의 역사 또한 대한민국 정부나 이곳의 주민들이 주체가 되기 보다는 일본과 미국이라는 외세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던 부분이 많았다. 시민공원 일대의 주민들은 이 지역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객체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그저 지켜보기밖에 할 수 없었던 상황들이 100여 년의 역사를 거쳐 발생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1전시실을 들어서자마자 발견할 수 있는 렌티큘러 연출은 직관적으로 이곳의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연출이다. 한국의 농지가 어느 순간 일본인들을 위한 경마장으로 겹쳐 보이고, 일본군 훈련소에 징용되어 근무하던 한국인 어느 순간 전범이 되어 버리고, 일본군이 떠나 간 그 자리에 바로 미군이 들어오는 상황이 직관적으로 관람객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렌티큘러 연출이 제시되는 시점은 연출이 보여주는 통찰에 비해 다소 아쉽다. 관람객은 관련된 지식이나 내러티브를 아직 숙지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데, 사전 정보 없이 전시실 동선의 시작부터 결론에 해당하는 연출을 제시한 것은 배치의 효과가 의문스럽다. 그런데, 그리 넓지 않은 공간과 많지 않은 사업비 등 자원의 제약으로 인한 상황이 있었겠지만, 이 이후에도 전시를 아우르는 내러티브 없이 자료가 독립적으로 혹은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경우가 몇 번 반복된다. '진중일지'나 '고사포 모형'같은 유물은 굳이 등장할 이유를 찾기가 어렵고, 설명패널에서도 적절한 맥락에서 관련성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전시에서 하던 이야기의 흐름을 흐리는 기능만 하고 있다. 1전시실의 서두에서 세 가지 이슈를 제시하고 해당 이슈를 이후에 세부적인 연출로 나눠서 자세하게 설명하려 했다는 의도가, 세부연출이 한 두 번 내러티브에서 이탈함으로써 일관성을 잃고 완성도도 떨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전시실에서 연출을 제시하는 리듬과 공간의 시각적인 구성은 양호하다. 그래픽 사인과 쇼케이스, 모형연출과 프로젝션 영상, 인물모형 등이 지루하지 않게 배치되어서 관람피로가 적절히 통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로 다양하게 매체가 사용되는 경우라면, 정보량이 지금보다 조금 더 많아도 괜찮았을지 모르겠다. 
빛의 공간 앞서 언급했듯이 역사관의 전시는 건축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다. 역사관의 전시에서 건축이 개입하는 부분은 박물관 내에 가장 큰 단위 공간인 ‘기억의 공간’과, 바로 여기 1전시실과 2전시실 사이에 위치한 보이드 ‘빛의 공간’이다. 하지만 앞선 ‘기억의 공간’이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반해 이 ‘빛의 공간’은 전시의 흐름과 부합하지도 않고, 자체적인 의미를 가지지도 않는다. 사업의 진행과정 상 선행하는 건축의 설계의도와, 그에 후행하는 전시의 기획의도가 전형적으로 불일치하는 사례 중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무의미하고 설득력이 없게 된 중정 설계를, 운영 측에서는 장고 끝에 포토존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때문에 선형적인 동선 상에서 전시의 초입이 이제 지났을 뿐인 지점인데, 관람객은 해당 공간을 포토존으로 활용해야 한다. 

 ‘빛의 공간’이 전시에서 기여하는 유일한 부분은 당연하게도 공간의 변화를 통해서 관람객의 정서를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기억의 공간’과 1전시실에서, 보다 밝은 2전시실로의 분위기 전환이 갑작스럽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전시에서의 거의 유일한 기여이다. 자연광이 들어온다는 사실 외에는 ‘빛’의 공간이라고 명명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공간이다.

 실외공간은 소장품의 관리에 적합한 환경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중정을 일반 건축에서 활용하듯이 노출시킨다면 전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효공간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면 중정이 갖는 건물 내에서의 상징성과 전시의 내용이 부합할 수 있도록 상징적인 연출을 시도하거나, 작가를 섭외해서 야외용 작품 전시하는 것도 고려 가능한 대안이었을 것이다. 작가와 큐레이터의 간극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서로간의 역할 구분이 절대적이어야 할 이유도 약해지고 있는 요즘의 담론들을 고려할 때, 역사관의 중정 활용은 경제적이고 편의적이기만 하다. 이후에 언급하게 될 2전시실의 한 켠에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할애하고 있는데, 그런 실험적 연출은 ‘빛의 공간’에서 시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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