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展示 : 외면할 수 없는 것들

[2014] 부산시민공원 역사관 (2/2)

blueturtle46 2015. 5. 6.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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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전시실: 또 다른 낯선 만남

 2전시실과 3전시실은 일제강점기를 다룬 1전시실에 이어서 미군이 공원부지에 캠프 하야리아를 건설하고 주둔했던 1945년에서 2006년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그 중에서 2전시실의 전시는 하야리아 부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전시실과의 차이는 공간의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밝아졌다는 점이다. 공간의 주조색도 브라운계열에서 에메랄드계열로 바뀌었고 조도도 밝아졌다. 재미있는 점은 전시의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이나 메시지 자체의 뉘앙스도 함께 밝아진다는 점이다. 공원부지로 대상을 한정시켜서 접근했을 때, 일본이나 미국이나 점유의 주체가 외세라는 것은 변함이 없음에도 미국을 우방으로 인식하는 성향을 2전시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전시실의 이름이 1전시실에서는 ‘잃어버린’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상실과 박탈의 이미지를 부여한 반면에, 2전시실에서는 ‘만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점유주체에 대한 이미지를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공간의 분위기가 밝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부대마크 등을 배치하는 방식도 광고이미지를 배치하는 것처럼 역동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공간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은 전시에 리듬을 부여하려는 전략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친미보수적인 부산의 정치적 성향 혹은 인식이 박물관의 전시에도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하야리아 부대를 다루는 이러한 시점상의 묘한 변화는 관람객을 하야리아 부대 안으로 이끌고 들어가고, 하야리아 부대장의 책상을 재현하여 앉아보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미군 사병의 심정이 되어서 하야리아 부대의 생활을 그려보는 경험까지 유도하고 있다. 설명패널의 텍스트에서도 하야리아 부대의 일상을 야구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제시하고 있고, 한국인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하야리아 부대의 존재가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관계에서 어긋나거나 기술적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제강점기를 다루던 1전시실의 논조와는 다르게 일화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은 분명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2전시실에서 사용하는, 해석의 폭을 넓게 활용한 전시방법은 그 함의를 의심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전시의 재미와 몰입, 공감이라는 측면에서 효과적인 접근들도 분명히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부대 정문을 축소 재현한 기둥 가운데에 보안검사를 위해서 기념스탬프를 찍으라고 유도하는 부분은, 재기 발랄한 전시방법이자 효과적인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갓 전입 온 사병에 대한 가상의 이야기 또한, 역사관의 모든 연출 중에 유일한 가상의 이야기를 설명패널로 제시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인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최소한 관람객에게 재미를 느끼게 하고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도록 기능하기는 한다.


제3전시실: 하야리아 부대 마을 이야기

 2전시실에서 하야리아 부대의 정문을 축소 재현하면서 시작된 공간 재현연출은, 3전시실 ‘하야리아 부대마을 이야기’에 들어오면서 보다 본격적인 전시어휘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하야리아 부대에서 속칭 ‘부대마을’로 통하는 3번 게이트의 모형을 통과하면, 당시에 부대와 지역민들간의 실질적인 소통이 가장 활발히 이뤄졌던 거리가 재현된다. 

 미군과의 거래로 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던 거리와 ‘빅토리 양복점’, ‘핫나잇’, ‘고려슈퍼마켓’ 등의 당시 점포를, 사진자료와 입주민 인터뷰를 통해서 실물크기에 가깝게 재현한 연출은, 그 거리의 이야기를 직접 겪어보거나 들어보았을 부산시민들에게 강력한 전시언어로 어필한다. 2전시실에서 시도한 가상의 인물과 스토리는 그 재미와는 별개로 해당 공간에서 전시의 일관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었지만, 3전시실에서 사용하는 실물 모형과 재현 연출은 실제의 일화와 더해져 상상과 해석에 대한 경계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아울러 3전시실에서는 관람객의 공감과 참여를 더 이끌어내기 위해, 보여주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직접 열어보고 발견하는 연출 또한 제공을 하고 있다. 노점상의 상자를 열어보니 당시의 사람들이 선망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미제’ 담배와 미군커피가 나오는 영리한 연출이 그것이다. 당시에 사람들이 욕망하던 것이 무엇이었고, 지금 전시공간에서 관람객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취할 만한 행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 연출이다. 그리고 공간을 통째로 이식함으로써 보고 듣는 것의 정보량이 훨씬 많아진 상황에서 관람객의 역할이 일방적인 정보의 수용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촉감을 통해서 정보를 찾도록 기회를 준 것은 유효한 선택이다. 

 주된 연출 방법에 변화를 준 것 이외에도 3전시실이 다른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3전시실에서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주된 방법론으로 실물에 가깝게 재현한 모형연출을 선택한 것과 함께, 이야기를 서술하는 시점에서도 다시 한 번 변화를 준다. 3전시실에서는 당시 부대마을에서 점포를 운영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개인사를 개인의 시점에서 서술한다. 거시적이고 객관적인 정보의 전달 보다는 개인의 미시적 이야기들에 기반을 둔 공감의 형성이 3전시실의 목표이기 때문에, 패널의 텍스트를 활용하는 방식도 보다 더 문학적인 방향으로 변화한다. 재현모형에 등장하는 인물의 사연을 소개해주는 방법에 있어서도, 텍스트를 쓰는 주체의 주관적인 감상은 물론이고 당시 인물이 느꼈던 감정에 대한 묘사도 서슴없이 시도한다.

- 장사가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벌이고…

- 하야리아 부대가 있을 때는 장사가 그럭저럭 괜찮았다.

- 지금이라도 어르신을 찾아 뵙고 마루에 걸터앉으면 언제나처럼  “어서 오게, 이리 와서 차나 한 잔 하자”하며 또 다시 범전동 옛날 이야기를 전해주실 것 같다.

텍스트를 쓰는 시점이 3인칭이 될 때도 있고, 1인칭이 될 때도 있지만 서술의 목적 자체가 사실의 설명이 아니라 이야기의 전달로 바뀐다는 것이다. 일관성의 문제를 비롯해서, 소극적인 번역, 문법적인 오류 등 역사관의 패널 텍스트를 쓰는 방법에는 다소 문제가 있었는데, 그럼에도 3전시실의 모형연출과 함께 사용한 적극적인 텍스트들은 충분히 효과적인 글쓰기였고 연출효과를 배가시켜 준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거시적 역사와 미시적 개인사를 오고 가던 전시의 시점은 4전시실에서 다시 한 번 변화하게 된다. 


제4전시실: 함께 싹 틔운 미래의 희망

 전시의 마지막 부분인 4전시실에서는 미군기지의 반환부터 공원이 조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1980년대의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술시점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던 역사관의 전시는, 재미있게도 현재시점의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 와서 거짓말처럼 시점의 집중력을 잃어버린다. 역사의 어느 순간보다도 현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조심스러운 것은, 복잡한 이해관계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를 하는 쪽에서도 듣는 쪽에서도 잘, 그리고 다르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공원에 대한 입장, 정부측의 대응, 공원의 조성계획에 대한 소개, 조성과정에서 발굴된 고대의 유물까지 언급할 수 있는 것들은 많았다. 그래서 4전시실이 취한 전략은 정부의 시각, 시민들의 시각을 골고루 그리고 적당히 안전하게 거리를 두어서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넓지 않은 공간 속에서 그런 중립적인 사실들은 각자의 공간을 전시실 내에서 점유하였고, 그로 인해 전시의 내러티브는 묘하게 흐려졌지만 결과적으로 안전한 거리 두기 전략은 성공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인터랙티브한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것이, 관람객을 현재의 이야기에 참여시키려 했다는 의도를 어느 정도 대변해주고 있다. 실제로 Xbox Kinect 시스템과 연동한 인터랙티브 게임을 반환을 촉구하는 시민운동의 일환이었던 ‘인간 띠 잇기 대회’와 ‘풍선/종이비행기 날리기’를 체험하는 의도와 연결시키고 있고, 키오스크와 연동한 스크린에는 관람객이 자신의 아이디어로 시민공원을 가상으로 꾸며보는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4전시실이 전시의 말미이자 현실의 이야기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 같은 참여를 통해 전시에 대한 긍정적인 각인을 유도하는 것은 적절한 접근방법이다. 

 하지만 4전시실에서 전시를 제시하는 순서와 공간 내 동선설계는 쾌적한 전시의 관람을 방해하는 요소이다. 동선의 흐름으로 보았을 때, Kinect연동게임을 체험하기 바로 직전에 제시되는 것은 엉뚱하게도 조성기간 중 발굴된 고대유물이다. 유물을 4전시실의 이야기 맥락에서 제시했어야 하는가도 의문이지만, 그것을 반환과정의 타임라인과 Kinect 연동게임 사이에 배치시킨 것은 분명한 판단 미스다. 또한 Kinect 연동게임의 다음에 배치된 것은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영상실이다. 정적인 쇼케이스와 동적인 Kinect연동게임, 그리고 다시 그 다음에는 다큐멘터리 영상실이 배치되는 전시는 각각이 맥락과 어울리지 않는 문제와 함께, Kinect 게임에서의 소음과 움직임으로 인해 인접한 전시가 관람의 방해를 받는 문제를 야기한다. 게다가 Kinect게임이 점유하는 공간 때문에 4전시실 내의 영상실 출입동선과 공원 꾸미기 체험 동선이 중복되는 현상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관람객의 참여를 위해 내러티브를 포기하고 디지털 미디어를 도입한 전략적 선택은 배치상의 실책으로 인해 정상적인 관람까지도 일부 지장을 초래하였다.


그럼에도 가치 있는 지역박물관

역사관의 전시를 조닝별로 복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기억의 공간은, 보존 건축이 가진 공간적인 아우라를 역사관의 전시와 공원 사이의 전이공간으로 비교적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축 공간과 매체의 경제적 사용이 우수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해당 공간을 보존하는 당위와 맥락에 대해 관람객에게 이해를 시켜줄 수 있는 내러티브가 부족한 점은 전시구성상의 실책이다. 

전시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는1전시실은 색채와 조도를 일제강점기라는 전시상의 시대 배경과 잘 어울리도록 설정하였으며, 이미지와 텍스트, 실제 유물과 양감을 가진 모형 등을 리듬감 있게 배치하였다. 전시정보를 제시하는 방식에 있어서 전시실의 내러티브와 대응하지 않는 부분은 조정하거나 생략하는 선택과정을 거쳤더라면 보다 완결성 있는 전시구성이 가능했을 것이다.

1전시실과 2전시실을 연결하는 지점에서 중정인 ‘빛의 공간’을 포토존으로 사용하고 있던 것은 관리운영의 측면에서 경제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빛의 공간’이 역사관의 보존부분과 대응하는 상징적인 건축요소임에도 보다 적극적인 연출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전시의 흐름을 전환하는 역할로만 사용한 부분은 아쉬웠다.

2전시실은 미군주둔기를 전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사용하며, 캠프 하야리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2전시실은 1전시실과 비교하여 공간의 분위기나 전시를 제시하는 방식, 전시의 시점까지도 많은 부분이 보다 우호적으로 변화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의식적인 전략이었든, 무의식적인 태도의 반영이든 2전시실에서 보여주는 미묘한 뉘앙스와 전시방법의 차이는 박물관이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하야리아 부대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던 ‘부대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3전시실에서는 전시의 시점이 보다 극적으로 변화한다. 부대마을을 실제스케일에 가깝게 재현하여 재구성한 모형연출은, 1980년대 전후로 마을에서 삶을 영위하던 이들의 개인사를 전달하는 아주 효과적인 전시언어로 사용된다. 또한 개인사를 전달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사용된, 패널의 문학적인 텍스트 사용은 흥미로운 커뮤니케이션 전략이었다.

비교적 우수한 완성도를 유지하던 역사관의 전시는 미군기지의 철수와 공원 조성기간을 다루는 4전시실에 오면서 다소 산만해지는 아쉬움을 남긴다.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하여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적절한 배치에 실패하면서 동선의 중복과 연출 간의 간섭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결과적으로 4전시실은 내러티브가 동반되지 않은 연출매체는 시스템의 우수함이나 연출의 수려함과는 무관하게 전시의 참여도를 저해하게 됨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역사관의 전시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전시를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메시지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확실한 컨셉이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역사관의 전시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 전략적으로 공간을 구획함으로써, 공간별로 세련되고 고유한 디자인 정체성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설득력 있는 전시를 구현하였다. 일부분을 제외하면 연출 매체를 활용하는 아이디어와 리듬도 아주 뛰어나다. 역사관의 전시는 한정된 예산과 공간 하에서도, 가용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한 영리한 전시이다. 그리고 이 정도의 공간 디자인과 밀도 있는 이야기를 담아낸 전시를 부산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비수도권과 수도권의 상대적 문화격차를 감안했을 때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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