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展示 : 외면할 수 없는 것들

[2013] 규슈 국립박물관

blueturtle46 2016. 2. 1. 12:27

규슈 국립박물관 홈페이지 - http://www.kyuhaku.jp/

대내외적으로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는 변화들로 인해 점점 국가라는 존재의 위상과 당위에 대해서도 다양한 담론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적어도 문화인프라에서 '국립'이라고 하는 단어가 결합되었을 때 부정적인 기대를 갖게 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발달한 전시문화를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일본의 박물관, 그것도 국립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규슈 국립박물관(이하 규슈박물관)을 찾게 된 나의 기대감 역시 제법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검색으로 우선 확인한 규슈박물관은 위의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유려하고 웅장한 입면디자인으로 유명했다. 전시의 내용까지는 검색으로 확인할 수 없었으나 그간 봐왔던 일본 전시들의 수준을 감안하면, 규슈박물관의 전시는 규모와 내실을 동시에 만족시켜 줄 만한 경험이 되리라는 예상은 어느 정도 타당한 것이었다. 


그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건물의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우선 외부입면 및 천장구조물의 곡선과는 다르게 직선과 직방형의 구조로 전시공간을 다시 구획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건물의 규모자체가 이미 충분히 크기 때문에 내부에서 공간을 다시 쪼갠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충분히 아름답다. 하지만 일단 내부공간의 분위기는 하이테크적인 외부의 분위기와는 조금 달라졌다.


1층에 강당, 세미나룸, 카페, 뮤지엄샾 등 편의 및 다용도 시설을 갖추고 있고, 에스컬레이터 등을 이용해 위로 올라가면 3층에서는 특별전 및 기획전을, 4층에서는 상설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캐릭터를 사랑하는 일본문화는 익히 알고 있으나, 규슈박물관의 뮤지엄샾 디자인이 이 공간 안에서 만드는 묘한 불협화음은 전체적인 관람경험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규슈박물관의 공간은 상당히 묘했던 것이, 건축에 의해 구성된 구조적인 부분은 규슈박물관의 검색결과가 파사드 밖에 나오지 않을 만큼 뛰어난 반면에, 전시나 안내, 편의시설 등과 같은 공간의 세부적인 부분은 상대적으로 열악했다.  


아니, 정확히는 열악했다라기보다 산만하거나 조잡했다. 안내사인이나 배너, 모형 등이 일관된 계획에 따라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다 따로 노는 느낌이랄까. 건축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사인들끼리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일단 본연의 전시관람에 다시 집중하도록 한다. 3층의 특별전은 박물관에 약간 늦게 도착한 관계로 아쉽지만 패스하고, 4층의 상설전시실(박물관 측이 굳이 문화교류전시실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알 수 없다)로 향했다.


하지만 다시금 묘한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는 모형 전시를 상설전시실 앞에서 만나게 되었다. 대형 모형을 전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박물관을 지탱하는 구조강관들 사이에 위태롭게 갇힌 듯 자리한 대형모형들을 보면서, 나 또한 잠시 복잡한 생각에 사로 잡혔다.


정신을 추스르고 본격적으로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상설전시실로 들어간다. 일어에서 쓰이는 도()와 로()의 의미차이는 알 수 없으나, 일단 '바다의 길, 아시아의 길'이라는 주제의 전시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아마도, 확실히 이 부분에서 나의 국립 규슈박물관에 대한 기대는 상당부분 무너지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려하고 인상적인 연출기법이 없기도 했지만, 사실 박물관의 전시를 평하는 데에 있어서 연출기법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박물관의 전시물이 그것을 보는 관람객에게 적절하게 정보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기법 자체는 화려하든 소박하든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명색이 '국립'박물관의 상설 전시인 주제에 번역이 거의 전무했다는 것이다. 상설전시실 내의 소전시실마다 방의 이름이 한국어로 표기해 놓은 것을 제외하고는 한글설명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물론 규슈박물관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그리 많지는 않을테니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설명이 영어로도 제시되지 않은 상황은 개인적으로 무척 아쉬웠다. 그나마 번역문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상설전시실 앞에 놓여있던 키오스크에서 였다. 길지 않는 내용에 번역 자체에 굉장한 성의를 느낄 수 있던 것도 아니었으나, 괜시리 감격스러워서 찍어보았다. 


결과적으로,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나는 전시의 내용이나 흐름을 100%로 따라갈 수 없었고, 그저 추론과 상상을 거듭해가며 내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재구성하는 식으로 전시를 감상했던 것 같다. 


 

분명히 기대치가 개인적으로 무척 높았던 박물관이었고, 다소간 실망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규슈박물관은 자신만의 자산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박물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산 혹은 강점들을 어떻게 운용해서 효용을 극대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조금 더 필요해 보였다. 

규슈박물관을 보고 나오면서 박물관이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니 이건 왠지 한국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국내에서도 이처럼 외관을 건설하는 데에 프로젝트의 사활을 건 나머지 정작 운영이나 컨텐츠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게 된 문화사업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사람들이 사업의 우선순위를 몰라서 그렇게 되는 것인지, 혹은 알긴 알지만 다른 변수들에 의해 일이 그렇게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국립'이라는 타이틀에 대해 국민들이, 납세자들이 갖게 되는 기대감은 절대로 가볍지 않다. 적어도 나 같은 사람은 아주 아주 아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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