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展示 : 외면할 수 없는 것들

[2012] 오사카 시립 해양박물관 (2/2)

blueturtle46 2015. 5. 6. 00:53

<에 이어서...>

 

3F. 오사카항의 번영

 

 

 4층에서 3층으로 내려오면,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가다 보면 오사카까지 가겠네라는 느낌으로, 오사카의 항구와 그 발달사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쩌면 전시의 명확한 내러티브를 잡아낼 수 없는 게, 꼭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한다. 참고로 4개의 전시층은 위에서부터 동선순으로 각각 '바다가 이어주는 세계문화', '오사카항의 번영', '배', 그리고 '바다로의 초대'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오사카항의 건설과 발전에 대한 전시는 여전히 일어 일색이었지만, 그럼에도 전시의 연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일본 특유의 정교함이 살아있는 디오라마 덕분에, 나처럼 일어를 이해할 수 없는 관람객도 충분히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전시실 밖의 통로 곳곳에는 '버추얼 해설원'이라고해서 이런 식의 연출영상을 곳곳에 설치해두고 있는데, 조도가 겁내 높은 공간에서 반투명의 유리를 스크린 삼아 프로젝터 영상을 쏘는 자신감 또한 여전했다. 요즘에는 프로젝터를 많이들 쓰기 때문에 이게 왜 근자감인지 쉽게 이해되리라 생각한다만, 여튼 이런 연출은 극장에서 조명을 켜놓고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즉, 이러면 영상이 잘 안 보인다. 하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다음으로 이동한다.

 

 

 사진의 공간은 전시실과 전시실의 사이를 '오사카의 축제'라는 주제로 꾸민 특설공간인데, 여기도 묘하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건축이 가진 하이테크적인 분위기랑 전통적인 공간을 재현하는 연출이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다. 이런 묘한 부조화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게 의도였는지는 모르겠다만, 박물관 건축과 전시공간의 분위기가 상충되어 일종의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와중에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기 위에 비치해둔 코팅종이에는 한국어 해설이 있다는 것다. 돈 들여서 만든 상설전시의 커다란 사인패널은 신경도 안 쓰면서!!! 대체 왜 돈을 이상하게 쓰는 거야??!!

 

 

 

 

 어쨌든 저쨌든 포토존이다. 포토존은 모든 관람객이 좋아하는 거니까, 배경이 21세기든 에도시대든 함께 사진 찍으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을 거다. 그랬을 거다. 

 

 

 

이어지는 곳은 오사카의 번영을 주제로 한 전시실이다. 이미지 위주로 단출하게 구성되어 있는 곳인데, 전시실의 주제인 오사카의 번영이 그다지 잘 전달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러한 전시연출에서 보이는 다소간의 미흡함, 엄밀히 따지면 약간의 무성의함들은 박물관을 건립할 당시 전체적으로 전시계획이 느슨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박물관이 개관하게 된 건 아닌가 하는 괜한 상상까지 하게 만들었다. 기술이나 연출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시계획이 꼼꼼히 준비되고 검토되지 않았다는 인상이 남았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박물관을 운영하는 쪽에서 나름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지역의 중학교와 연계해서 콩쿨 참가작들을 전시하는 것은 흔한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백 번 낫다. 박물관이 테마파크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교육이라는 점이기 때문에, 이런 학교와의 연계는 기본적이지만 또 동시에 중요한 활동이다.

 

 

 이어지는 전시실에서는 오사카의 물류와 해운의 발달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에도시대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 그래픽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지만, 박물관 공간 자체가 워낙 현대적이고 조도도 전체적으로 높게 유지되고 있어서 전시공간이 현재와 다른 별개의 시공간으로 느껴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예의 모형과 설명패널, 영상들은 요소요소에 적절히 사용되고 있고, 소위 마감이라고 하는 완성도가 아이템 개별적으로는 다 우수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보는 재미는 충족시켜주었다. 2층으로 내려가면 지게를 짊어보는 체험코너를 마련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전에는 지게를 짊어져보는 체험도 3층 전시실에서 운영하면서 다채로운 경험을 관람객들에게 제공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2F. 배

 

한 층 밑으로 내려가 2층에 가면 '배'전시를 만나게 된다. 전시주제가 깔끔하고 강렬하게 그냥 '배'다. 

 

 

돔을 들어오면서부터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던 이 배 '나니와마루(浪華丸)'에 오를 수 있는 곳이 2층의 전시공간이기 때문에, 그냥 '배'라고 전시공간의 주제를 명쾌하게 정한 것도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박물관의 팜플렛과 위키 등에 의하면, 실물크기로 복원한 '나니와마루'는 원래 에도시대에 오사카와 에도를 오가던 운송선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패널에 보이는 히가키카이센(菱垣廻船)은 당시 에도와 오사카를 오가던 2,000석급의 대형상선을 지칭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약간 급조된 느낌의 연출이 모니터 영상과 함께 덩그러니 놓여 있어서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이 문을 연 건 2000년 7월이었다고 하는데, 1999년 내용이라고 해도 개관 후로도 10년 넘게 해당연출을 설치할 적당한 위치를 찾지 못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일단 배로 향하도록 한다. 

 

 

그나마 직접적으로 안전과 연결된 곳이기 때문인지, 혹은 이전에 수차례 한국관광객들의 항의가 있었던 것인지 여튼 감사하게도 한글안내를 만나게 되었다. 

 

 

다시 등장하는 '버추얼 해설원'. 분명히 재미있는 연출이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눈에는 그리 잘 띄지 않는다. 

 

 

쇼케이스 안이 아닌 곳에 전시물을 배치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가슴 뛰는 일이지만, 큐레이터나 보존과학자의 입장에서는 가슴 졸이는 일이다. 돌발행동이나 위험상황의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여기저기 주의사인이 붙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하튼 안전모를 쓰고 고개를 잔뜩 숙인 채로 순로사인을 따라서 '나니와마루'의 선실 안으로 들어가면 나름 흥미로운 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공간과 장소자체가 주는 독특한 느낌이 있기 때문에, 설령 전시물의 정보를 학습하는 데에 이상적인 환경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관람객들에게는, 적어도 나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나니와마루'에서 내려오면 짐가마니를 들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코너가 나온다. 3층에서 봤던 사인이 이 체험코너를 가리켰던 것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아마도 그럴 것이라 추정하며 그냥 지나쳤다. 현지 양반이 시도하는 걸 한 번 봤는데, 그리 아름다운 모양새는 연출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으로 일본 선박의 변천과 히가키카이센의 연혁을 설명하는 전시실이다. 박물관의 전시동선이4층부터 동일한 건축 구조를 반복해서 한 층 한 층 내려오게 되어 있기 때문에, 2층 쯤 오면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슬슬 지겨워지거나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시디자이너들은 연출기법을 전시공간마다 나름대로 변주하면서 관람객들이 느낄 것으로 예상되는 지루함이나 관람피로를 최소화하려고 시도한다. 여기서 사용한 방법은 쇼케이스 내부의 조도를 조절함으로써 영상과 사인패널을 교차로 보여주는 연출이다. 나름 극적인 효과를 주었던 연출방법이었는데, 그것이 과연 일본선박의 변천사를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데에 어떤 식으로 기여했는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남는다. 

 

 

다음은 시뮬레이터로 일본의 목조선박을 운항해볼 수 있는 체험공간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체험이 불가한 상황이었다. 시뮬레이터들이 왜 다 이모양인 거야??!!

 

 

 

그리고 2층 전시의 마지막은 '나니와마루'가 어떻게 건조되었고 또 복원되었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전시자체의 흥미와는 별개로, 선체의 어떤 부분에 어떤 목재가 쓰였는지 적절히 사인그래픽을 활용하여 알기쉽게 전달하고 있다. 

 

 

1F. 바다로의 초대

 

4층부터 전시를 보았다면 전시의 마지막 부분이 되는 1층 '바다로의 초대'는 키즈 코너와 체험 코너, 영상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상관에서는 '세계의 항구도시 기행'이라는 영상과 'SHIP-6000'이라는 모험 애니메이션을 상영중이었으나 아쉽게도 시간관계상 직접 보지는 못했다.

 

키즈코너에 설치된 놀이기구라고 부르기는 약간 민망한 설치물인데, 아이들은 개의치않고 적극적으로 뛰어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체험코너 쪽에는 프로그램이 마칠 시간이 다 되어서인지 그리 사람이 많지는 않았으나, 프로그램의 구성 자체는 알차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체험용 기자재라고 해야할까 교육용 체험 세트들을 만드는 데에 꽤 공을 들였음을 알 수가 있었다. 아동용 교육 프로그램이 성인의 눈에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 긍정적인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내눈에도 재미있게 보였다. 앞서 언급했던, 전시는 약간 성의가 부족하지만 운영과 교육 쪽에서 이를 만회하려고 열심히 하는 듯한 인상을 다시 받았던 부분이다.

 

오사카 시립 해양박물관의 경우는, 박물관의 전시공간 자체가 건축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상황이고, 전시 동선 또한 중앙의 선박모형을 중심으로 순환되게 구성이 되어 있어서 전시에서 기승전결의 흐름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다소간 느슨한 전시계획을 운영쪽에서 만회하려고 노력을 하는 듯한 인상이었으나, 솔직히 말해서 건축적인 랜드마크 이상의 무언가를 찾아내기 어려웠다. 물론 이런 평가는 상당부분 외국인으로서 전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탓이 크겠지만, 그를 감안하더라도 전체적인 건축공간과 전시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해저통로를 통해서 전시공간에 들어서게 되고, 실물크기의 대형 목조선박이 스펙타클을 관람객에게 전달해주고 하는 단계에서는 굉장히 접근이 재기발랄했다. 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의 계획이 묘하게 느슨했다. 전시가 어떻게 건축을 활용하느냐, 혹은 건축이 어떻게 전시를 담아내느냐의 과정이 긴밀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추측을 할 뿐이지만, 이런 추측도 무색하게 오사카 시립 해양박물관은 지난 2013년 3월에 재정문제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 혹시라도 재개관을 하게된다면,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자산들을 잘 활용해서 보다 좋은 박물관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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