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적 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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展示 : 외면할 수 없는 것들

[2011] 오사카 역사박물관

blueturtle46 2013. 6. 14. 12:31


 오사카 역사박물관(http://www.mus-his.city.osaka.jp/kor/index.html)이다. 관광자료에 소개된 외관이 일단 번드르했고,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오사카 성과 바로 붙어 있기 때문에 관광객이자 나름 업계관계자 입장에서 지나치기 아쉬웠다. 전시디자인은 입지선정과정에 관여할 일이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에 크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지만, 입지가 어디냐에 따라 관람객의 유입이 크게 영향을 받겠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느낀다. 


 흔히들 생각할 수 있는 박물관 건축의 전형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고층건물인 오사카 역사박물관. 그 옆은 오사카 NHK라던데,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갔다.


 전시공간을 수직으로 중첩된 형태로 확보할 수밖에 없었던 때문인지 당연히 층별로 주제를 구성했고, 관람동선은 조금 특이하게 느낄 수 있는 하향식(?)이다. 10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한층 한층 전시를 둘러보며7층까지 내려오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도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처럼 적극적으로 관람동선을 계획한 곳이 있지만, 저때는 촌스런 마음에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프롤로그 공간부터 둘러 보았다. 일본도 어지간하면 다 항구도시라 오사카가 물의 도시였는 줄은 딱히 몰랐지만 여튼. 




 그렇게 한쪽 강화유리 창밖으로는 오사카 성이 내려다 보이고 다른 한쪽으로는 고대의 인물들이 관람객을 반겨주는 묘한 시공간 속에서 전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성터가 내려다 보이는 바로 저곳에, 창밖의 비어있는 성터가 어떻게 채워졌을지를 보여주는 가상의 복원 영상을 배치해서 여기 입지를 허투루 잡은 게 아니라는 일종의 성의(그저 관광객의 입장에서 한두 군데 기웃거려 본 것 뿐이지만 일본 문화에서 내가 일관되게 받았던 정서랄까 느낌은 '성의'였다)를 전달해주었다.


 허접하다고 해야할까 심플하다고 해야할까 잠시 망설여지는 공간재현이다만, 앞에서 보여준 연출의 성의를 미뤄보아 이건 공간의 경제적 활용이라고 결론내린다.




 비교적 익숙한 스타일의 전시공간으로 들어와서 고대의 오사카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 추정되는 전시물들을 둘러본다. 아쉽게도 모든 패널이나 태그에 한글병기가 돼있는 건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 일본에 비해 전시문화에서는 후발주자인 우리나라에서도 한···영 무려 4개국어 병기까지 심심치않게 볼 수 있는데 반해 일본은 의외로 패널이 자국어 일색에 영어병기마저도 박한 것 같다.



 얼추 10층의 전시공간을 돌고 나면 창밖으로 아까보다 미묘하게 낮아진 시점에서 오사카성을 보면서, 이제 9층으로 이동하게 된다.



 9층은 중세에서 근세까지의 오사카라고 한다. 





 일본문화 특유의 숨막히게 깔끔한 모형 퀄리티를 유감없이 뽐내주시고, 사전지식도 일본어능력도 없는 나는 그저 바라만 볼 뿐.


 오사카의 지층 단면모형(인지 시료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을 보여주는 자연사적 접근이 새삼 이채롭다.





 그리고 이곳에서 뜻밖의 재회 혹은 조우를 하게 된다. 사무실에서 줄곧 보던 연출사례이미지가 여기 오사카역사박물관의 것이었다니. 조금 신기하고 부끄럽고 그랬다. 어떤 맥락에서의 연출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베껴서 써먹을까만 고민했던 게 쪽팔렸고, 그럼에도 가까이서 보니 역시나 매력적인 아이디어와 야무진 마감에 다시 감탄했다.




 우수한 퀄리티의 일러스트와 사인그래픽 마감을 활용한 연출로 9층의 지배적인 인상을 형성한 다음에도, 견실하게 연출들을 구성해서 단조롭거나 식상하지 않게 전시의 리듬을 유지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리 선호하지는 않지만) 작은 구멍 속을 들여다보게 만들기도 하고.


 실물사이즈에 근접한 재현모형을 동선상에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해보기도 하고.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영상들도 조잡하지 않은 수준에서 잘 관리가 되었으며. 




 미니어쳐나 패널, 쇼케이스 전시 같은 전통적인 연출들로 전체적으로 견실하게 전시공간을 구성하였다.  




 이건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곳으로, 인형을 전시한 코너인데, 무슨 용도인지 무슨 사연을 갖고 있는 녀석들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 기분나쁘게 정교해서 살짝 섬뜩하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옆에는, 관람객이 직접 조작해보면서 인형의 표정을 바꿔보는 체험 코너도 제공하고 있었다. 신기하고 재미도 있었지만 썩 유쾌한 느낌을 주는 녀석은 분명히 아니었다. (참고로 저 남자는 모르는 사람이다.)


  이제 8층을 볼 차례. 응? 그런데 발굴?




 공간확보가 안 되서 빌딩에 몇 층씩 쌓아 놓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닌게 공간이 적잖이 넓었다. 전문용어로 Museum Fatigue, 쉽게 말해 발 아픈 게 찾아왔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들이 지칠까봐 약간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집어 넣은 체험코너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침 체험운용이 중간에 비는 시간이었는지 체험코너는 한산했다. 마구마구 일본 아이들의 초상권을 침해해주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다.


 잠시 위층에서 봤던 걸 머리속에서 비우고 나면, 새로운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근대의 오사카 거리를 재현해서 위에서 한 번 바라보고 다시 밑에서 거리를 직접 지나가도록 구성한 것인데, 하나의 컨텐츠를 시점을 달리 하면서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었던 점이 무엇보다 시점의 피로도를 묘하게 없애주는 경험이었다.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도 연출이 완벽하게 보이려면 모형공정의 마감작업이 훨씬 피곤해졌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슬쩍 보여주고 나중에 직접 경험하게 하는 건 내용의 전달면에서도 괜찮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역사박물관의 전시, 7층이다. 게다가 무려 '대'오사카의 시대라니.


 8층에서 힐끔 보았던 근대의 모습과 전후를 거쳐 현재까지의 오사카를 그리고 있는 전시공간이다.




 인물 자체 보다는 인물의 동작이나 복장 등이 연출에서 더 중요한 부분이기에 인물 모형은 흰색으로 처리되었다. 하지만 색깔만 흰색이다 뿐이지, 재현의 퀄리티는 당연히 뛰어나다. 









 쇼케이스에 담아서 유물로 다뤄야 할 만큼 먼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향수나 분위기 정도를 느낄 수 있도록 적정선에서 모형과 재현연출을 통해 전시공간을 구성하였다.

 하지만 근현대사가 어쩌면 가장 할 이야기가 많을 수 있는 부분일텐데―내가 일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건지이 부분에서는 해명이든 사과든 별 다른 뉘앙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역사인식이 특별히 근현대사에 대해서만 흐린 것은 아닐텐데 뒷맛이 사알짝 묘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보니 뭐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쇼케이스 연출들... 그러니까 하다못해 영어로라도 설명을 붙여달라고.  여하튼 그렇게 길다면 길고, 그리 짧지는 않았던 역사박물관의 상설전시관람을 마치게 되었다. 


 자국의 역사박물관임에도 인류 보편적 차원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세계적 역사의식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견실한 구성의 전시공간이었음은 확실하다. 시단위에서 운영되는 역사박물관이 이정도라니, 확실히 전시문화에 있어서는 전체적인 레벨이 우리보다 위에 있다는 느낌을 물씬 받게 만든다. 부디 설명패널에 한글은 바라지도 않는다, 영어라도 적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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