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적 속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눈 뜬 장님의 지팡이 본문

鑑賞 : 작은 즐거움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눈 뜬 장님의 지팡이

blueturtle46 2014. 7. 10. 19:17

박흥용 (2002),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서울: 바다그림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전후하여, 피 끓는 서출 한견주가 맹인검객 황정학을 만나 무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영화는 이미 본 적이 있지만 원작은 소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만화 그리기를 꿈꾸었던 친구 녀석의 강력한 추천으로 얼마전에 드디어 원작을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은 만화 좀 봤다 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레전드로 손꼽히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영화로는 알다시피 그닥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나 역시 영화는 어딘가 뒤가 찜찜한 느낌으로 봤던 기억이 있었던 지라, 이번에 원작을 읽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영화와 비교를 하면서 읽게 되었다. 

 우선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영화는 황정학(황정민 분)과 이몽학(차승원 분)이 주인공인 듯 아닌 듯한 묘한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원작의 주인공은 당연히 한견주이고 영화에서도 사실 한견주가 주인공이다. 다만 문제는 주인공의 비중이 무척이나 아쉬워서 배우의 이름도 개인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캐스팅 비화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덕분에 영화의 이야기는, 조연들의 괜한 대결구도에 주인공이 소외되는 상당히 애매한 만듦새를 띠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서사의 아쉬움과는 달리 만화원작에서는 상당히 단단한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더욱 영화와, 그로 인해 오해(?)받았을 원작이 아쉽게 느껴졌다.

 그리고 만화 원작은 단순한 작화 스킬 이외에 지면의 연출에서도─영화에서는 담아내기 어려웠을런지 알 수 없는─뛰어난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떨어지는 기왓장 위에서의 정사장면이라든지, 어둠 속에서 방짜를 밟으며 길을 내는 장면, 하얀 개골산에 여체가 오버랩되는 장면 등은 그 연출이 무척 감각적인데, 이는 원작이 만화였기에 가능했던 주인공의 심리와 세계에 대한 묘사였을 것이다. 원작에서 한견주가 한견자(犬子)로 성장해가는─혹은 스스로를 받아들이는─이야기와 연출이 이처럼 풍부하고 힘이 있었기에 영화에서의 한견주에 대한 아쉬움도 한 번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한견주가 성장해가는 이야기 자체는, 혈기 넘치는 젊은이가 귀인을 만나 힘과 깨달음을 얻는다는 식이라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래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냐는 점일텐데, 개인적으로 이 멋진 이야기에서 조금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서출이라는 신분의 한계로 억압받아왔던 한견주가 자신의 탈출구를 결과적으로 자신 내부에서 찾는 듯했기 때문이다. 혁명을 꿈꾸는 이몽학에게 동조하지 않지만 또 저지하지도 않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자유로운 개인을 표방하는데, 어디까지나 애매하기만 한 태도이다. 뭐, 물론 모든 인물이 새로운 시대를 향해 자신을 내던져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작 한견주는 여럿이서 만들어야만 간신히 한 점 만들 수 있는 방짜에서 자신을 발견했음에도 종국에는 개인적 행보를 취한다는 것이 다소 모순적으로 읽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정치적 판단이야 어찌됐든, 전체적으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힘 있는 이야기이고 중간 중간 쉼표를 잘 찍을 줄도 아는 영리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장님인 황정학은 세계를 자신의 감각으로 인식하기 위해 지팡이가 필요했다고 하는데, 눈 먼 인간이 만일 눈을 뜨게 된다면 그 이후에는 지팡이를 어디로 향해야 할까? 그리고 나는 어디서 답을 찾고 어디로 향해야 할까? 좋은 문학은 좋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런 점에서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좋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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