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적 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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鑑賞 : 작은 즐거움들

[1Q84] 예의 그 하루키 이야기

blueturtle46 2014. 8. 21. 18:37

무라카미 하루키 (2009-2010). 1Q84 (양윤옥 역). 파주: 문학동네.


 이래저래 오랜만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2010년에 샀던 책을 4년이나 지난 이제서야 다 읽다니. 하루키 이야기가 가져다 주는 어떤 향수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사실 하루키 이야기는 나한테 어떤 메시지나 서사 이전에 일종의 정서나 분위기로 다가온다. 문학의 함의 따위는 물론 지금도 알지 못하지만, 유행에 편승하는 기분으로 아무 생각 없이 하루키 책을 들고 다녔던 대학시절의 날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특별히 문학에 심취하지도 않았으면서도 괜히 팔자 좋게 수업시간에 펼쳐놓고 있었던 하루키의 책과 이야기가, 나한테는 잊고 있었던 계절을 환기시켜주는 공기의 냄새 같은 것이었다. 

 하루키의 거의 모든 글들을 읽었던 것 같은데도(예전의 <언더그라운드>나 최근 발매작 정도가 안 읽어본 작품일 걸로 생각한다), 개중에 줄거리가 기억에 남아 있는 것들은 사실 거의 없다. 대개는 1인칭 '나'라는 재미없지만 꼼꼼하고 섬세한 남자가 나와서 이런 저런 비현실적인 상황들에 스며 들어가다가 왠 아낙들과 약간의 농을 주고 받은 다음 자신의 세계를 찾아 나간다는 식의 도무지 구체화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리고 '행인지 불행인지' 1Q84도 크게 그런 스타일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다. 어느 순간 달이 두 개인 세계에 처한 자신을 발견하는 인물들과, 비현실적인 리틀피플과 공기번데기가 등장하고 상대적으로 그나마 조금은 현실적인 종교집단이 등장해서 얽히고 설키는 이야기인데, 결말이 되어도 이야기에서 꽤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존재들에 대해서는 독자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을만한 설명을 전혀 제공해주지 않는다. 어쩌면 하루키의 책은 나처럼 그냥 별 생각 없이 일종의 스타일과 분위기로 느슨하게 대하는 것이 맞는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전혀 명쾌하거나 친절하지도 않고 스타일이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지만,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묘하게 나한테도 느껴진다는 거다. 어디까지나 문학적 설정이고 상상력이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그 존재여부마저 불확실한 상황에서 내던질 수 있다는 건,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다른 세계로 도전할 수 있다는 건 꽤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다.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고 점점 더 많은 크고 작은 선택들을 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나에게, 단순히 나른하고 비현실적인 스타일로서만 소비할 수는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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