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鑑賞 : 작은 즐거움들

[설국열차] 한국에서의 봉준호가 보고 싶었다

blueturtle46 2013. 8. 12. 11:41

설국열차 / 감독: 봉준호 / 2013


나는 감독 봉준호가 헐리웃에서 영화를 만든다고 하길래, 그가 이전 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치밀한 디테일과 힘 있는 이야기의 완결성은 물론이고 헐리웃 자본으로, 아니 사실상 헐리웃에서만 가능한 스펙타클까지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라는 매체의 끝을 무턱대고 기대했었다. 물론 그런 모든 것들을 다 담아낸 영화는 한 해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역사의 영역이지만, 감독으로서 그가 여지껏 보여준 재능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그리 허무맹랑한 기대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관객의 지적수준을 존중한 영화라고 했던가, 설국열차에 대해 그런 류의 평론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그게 관객의 지적수준이라기 보다는 교육수준이라는 쪽이 (물론 이런 말을 대놓고 하는 건 평론으로서는 별로 영양가가 없겠지만) 더 가깝지 않겠나 하는 거였다. <설국열차>는 사회를 빗댄 일종의 우화라고 보기에는 꽤나 직접적으로 대응되는 요소들이 두드러진 데다가, 이야기 자체도 에둘러 가지 않고 결론으로 명쾌하게 내다 꽂히는 영화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지적'이라는 뉘앙스를 잘못 넘겨짚는 바람에 기대하고 있었던 박터지는 두뇌게임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요소요소들을 곱씹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꺼리들도 곳곳에 깔려있는 풍성하기까지 한 영화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꽤 멋진 영화 영화다. 자랑스런 대한의 건아가 헐리웃 땅에 태극기를 꽂았다는 촌스런 생각까지 더한다면 극장을 나서면서 무지허니 가슴 벅찬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설국열차>를 보고 난 후에 정말 재밌었던 점은 내가 뭔지 모르게 실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영화를 보고도 실망하다니, 내가 그리 수준 높은 비평의 안목을 갖춘 관객이었던가? 물론 아니다. 난 퍼시픽 림 쨔응!!! 을 외치는 반(半)덕일 뿐인데 이 영화에 대해 뭐가 그리 아쉬웠을까? 그건 바로 <설국열차>가 감독 봉준호의 세계무대 진출작이라는 점이다. 이 정도로 세계에 먹힐까가 걱정된 게 아니라 세계에 어느 정도 먹힐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았다는 이야기이다. 

 <설국역차>보다 먼저 헐리웃에서 선을 보인바 있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를 봤던 당시에는 이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박찬욱과 봉준호의 스타일을 놓고 다시 생각해보니 어느정도 나의 아쉬움에 납득이 갔다. 초기의 몇몇 작품(이를테면 공동경비구역 JSA)을 제외하면 박찬욱은 이야기에 지역이나 배경의 문화적 정서를 그리 진하게 담아내는 타입이 아니다. 박찬욱의 이야기는 배경으로부터 독립적이었다. 반면에 봉준호는 그렇지 않다. 그는 한국땅의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타입이었다. 개인적으로 봉준호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는 힘 있는 이야기와 함께 그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 그리고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문화나 정서를 잘 녹여내기 때문이었는데 이번 <설국열차>는 한국사람만 볼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정서나 문화 같은 것은 배재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설국열차>가 아우르고 있는 인류 보편의 주제의식은 꽤 성공적으로 이야기에 배어 나오게 됐지만, 그 덕분에 나는 인류 보편의 공감대 속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소수자의 느낌도 한켠에서 느껴버리고야 말았다.

 봉준호여, 메이저리그 진출을 축하하지만 한국 무대에서의 활약을 기억하는 이들도 아직 있다우~ (으음... 그러고보니 왠지 류현진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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