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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想 : 오늘의 단상

나의 일용이

blueturtle46 2025. 4. 23. 12:50

녀석이 처음 내 배 위에 올라탔을 때의 느낌을 기억한다.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내 배 위로 아무런 고민 없이 풀쩍 뛰어 올라서 털썩 주저앉는 녀석을 보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뭘 믿고 나한테 지 몸을 저렇게 무방비로 맡기는 건가, 뻔뻔스럽기까지 한 저 믿음은 뭔가, 그리고 이 묘하게 작고 따뜻한 체온은 뭔가 하는 등등의 생각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내 배 위에서 팔자좋게 또아리를 틀고 잠을 청하는 녀석을 바라보는 몇 초 동안 스쳐 지나갔다.

녀석은 2008년 쯤에 태어났다고 들었다. 누나의 친구네에서 태어나 누나네 집으로 오게 된 작은 요크셔테리어의 이름은 왜인지 일용이었다. 똘똘하고 성질도 더럽지만 막상 낯선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쓸모없는 집강아지였다. 누나네 집에 갈 때마다 녀석은 두 발 들고(!) 미친듯이 나를(도) 반겨주었고, 나는 녀석을 그렇게 사랑하게 되었다. 매번 똑같은 레파토리의 장난을 반복해도 내가 지쳐서 그만둘 때까지 녀석은 단 한 번도 절대 지겨워한 적이 없었다. 

안면을 튼 건 제법 오래됐지만 내가 녀석의 실질적 보호자 노릇을 한 건 2013년에서 다음 해까지 1년 정도였다. 때마침 내가 백수가 된 기간이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암울한 나의 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시간 많은 보호자와 같이 지낼 수 있게 되어서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녀석이 집안 여기저기에 쉬야를 갈겨놓은 흔적을 발견하면서 역정을 내고, 같이 강바람을 마시며 공원을 거닐기도 하고, 가끔 멀리 나가 맘놓고 우다다다 달리는 녀석을 보면서 해방감을 대리경험하기도 했다. 그나마 녀석에게는 괜찮은 보호자이자 친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 되레 나에게 위안이 되었던 시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베란다 창밖으로 머리를 삐죽내밀고 있다가 나를 발견할 때마다 우다다다다다 뛰어와 반겨주는 녀석이,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의 사랑이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

잠에서 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내 옆으로 와 앞발로 톡톡 날 건드리며 함께 놀자고 하지만, 내가 잘 놀아주지 않더라도 녀석은 단 한번도 나한테 실망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나를 좋아해주고 기다려줄 뿐. 

언젠부터인가 본가에 갈 때마다 이게 녀석을 보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걱정이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큼 녀석은 오랜 시간 우리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 다리를 다쳐 동물병원에서도 몇 달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고 했던 것도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이제 사람으로 치면 노인의 나이가 되어서 보도블록을 뛰어 오르는 것도 힘겨워하는 녀석을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함께 했던 마지막 산책에서 녀석한테 고맙다는 말을 했었는지, 어느새 귀도 잘 들리지 않던 녀석이 그 말을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일용이는 2025년 4월 21일 녀석의 하늘로 돌아갔다. 가는 길이 무섭거나 아프지 않았기를 바란다. 정말 고마웠다.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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