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적 속물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어딘가 잘못된 게임 본문

鑑賞 : 작은 즐거움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어딘가 잘못된 게임

blueturtle46 2014. 8. 29. 20:57

장하준 (2010).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김희정, 안세민 역). 서울: 부키.

 

  인간의 욕심은 인간을 진보시키는 힘일까? 욕심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동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과연 어느 한도까지가 인간이 이용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범위일까?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며 우리사회의 실상을 접해갈수록 세상이 어딘가 뭔가 잘못된 거 같다는 느낌은 확신에 가까워져 간다.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우리사회의 철학이자 세계관은 바로 인간의 그 이기심 덕분에 시장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럴까? 이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그러한 물음에, 지금의 자본주의가 과연 제대로 된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한 듯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딱히 결론이라는 게 없는 구조기는 하지만), 저자인 장하준은 근래의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자유시장주의 논리는 실패한 것이고 이러한 시스템은 것은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이 하는 말과 달리 시장은 그 성장이 정체되고 있고, 국가간 계급간 빈부의 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되어 간다고. 그런데,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보면 자유시장주의는 실패했다기보다 차라리 완벽에 가깝게 성공했다고 보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자유시장주의라는 것이 애당초 모두가 잘 사는 것을 지향한 시스템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자유시장주의는 정말로 팽팽 잘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내가 발 딛고 서있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서 인생의 결과가 판가름 나는 시스템을 지향한 것이라면, 자유시장주의는 모두가 그 어떤 쪽으로 속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완벽한 게임이다.

  다만 문제는 이 게임이 너무나 피곤하다는 거다. 인간사회든 생태계든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생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경쟁이 뒤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게임은 피곤한 주제에 게임이 진행될수록 온갖 야바위들이 판을 쳐서 안 그래도 피곤한 게임을 더욱 더 피곤하게 만든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경제 주체들이 각자의 이윤추구동기를 실현하기 위해서 행동을 하면 합리적인 시장논리에 위배되는 불균형은 자연스럽게 해소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건지 이미 게임이 다 끝나버린 상황인 건지 도무지 균형이라는 게 잘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의 인간의 인지능력과 조직행동에 관한 연구를 소개한 부분이었다. 인간의 인지능력, 정보처리능력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입력하고 처리해야 할 정보가 많아질수록 인간은 이 정보량을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적절하게 통제하거나 조절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루틴(routine), 제도이자 규제라는 것이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자유로운 시장은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 어떤 규제 없이 팽창하도록 방치할 경우에 2008년의 금융위기처럼 인간의 인지수준을 훌쩍 뛰어넘어버린 통제불능의 혼돈상태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통제불능상태의 자유시장주의가 이미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그 시장 안의 경제주체들도 공정한 룰의 적용을 받는 게 아니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까지 하다. 인간의 인지능력이 가진 한계 때문에 각 경제주체의 합리성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시장의 균형이라는 것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아직 이해할 수 없는―심화된 소득불균형에 의해 불공평한 조건하의 착취양상으로만 심화되어간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전제가 훼손된 상황에서 개인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저자 장하준은 그래도 아직은 조금 살만한 것인지, 이 책에서 어떤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물론 이게 무슨 공산당 선언도 아니고 책 하나가 사회를 뒤엎을 수는 없는 노릇일 테지만, 공분을 사게 만드는 현실을 쭉 제시해 놓고 자유시장주의 논리는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는 원론 수준의 주장으로 책이 마무리 된 점은 다소 아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소한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었다. 이 피로한 자유시장주의의 게임에서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고 단 한 번이라도 느꼈다면,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눈을 부릅떠야 할 필요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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