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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적 속물
내 책상 서랍 속의 죽음 본문
병원을 다녀오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병원은 내가 어딘가 매우 아픈데 내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될 때 찾는 곳이다. 거의 모든 이들이 살아가다 가끔씩은 어딘가가 아픈 경험을 하게 되고, 또 모든 이들이 나름의 때가 되면 그런 아픔을 더는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된다. 병원은 삶과 죽음 사이의 어떤 경계에 위치한 공간이다. 그래서 병원을 다녀오게 되면 난 항상 그 가능성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나의 죽음을 생각해본다. 행인지 불행인지, 혹은 그냥 자연스러운 어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나 또한 많은 이들처럼 죽음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죽음에의 위협에 평균치라는 게 있지는 않겠지만, 나와 내 죽음과의 거리는 다소 억울하게도 누군가의 죽음과의 거리보다는 좀 가까울 것이고, 상당히 감사하게도 다른 누군가가 느끼는 죽음과의 거리보다는 한참이나 멀 것이다.
물론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지금 시점에서 적어도 건강에 관한 문제로 내가 그렇게 빨리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리 엄살 떨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란 게 별로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죽음의 가능성이라는 건 항상 염두에 두고 살기에 그리 유쾌한 생각이 못 된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평소에는 부러 노력해서 잊고 지내는 걸지도 모른다. 지울 수도 없앨 수도 없지만 최소한 눈 앞에서 안 보이는 데에 치워둘 수는 있다. 이를테면 머리 속 책상 서랍 깊은 곳에 죽음에 관한 생각 혹은 예감 들을 넣어두는 것이다.
그런데 병원을 다녀오는 날에는 그게 불가능하다. 싫든 좋든 그 서랍 깊숙한 곳에서 죽음을 꺼내서 이리저리 비춰보고 만져보고 킁킁 거리기도 해야 한다. 죽음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삶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어디서 주워들은 게 생각나는데, 삶에 대한 태도와는 별개로 나에게 죽음은 헤어짐이고, 아직 나는 어떤 종류의 헤어짐에도 그리 능숙하지 않다.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비춰보고 만져보고 킁킁거려 보게 됐지만 알 수는 없다. 묘하게 전보다 무거워진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새로운 약봉지를 받아 들고, 나는 누가 볼세라 허둥지둥 나의 죽음을 다시 서랍 속에 욱여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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